2017년 12월 17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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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향토유적 제1호를 아시나요?
- 용주서원을 찾아서

가을햇살이 따사로운 10월 28일 주말에 월롱산 아래 터를 잡은 용주서원에서 추향제가 열렸다. 파주유림과 관계자 50여 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용주서원은 조선 중기 휴암 백인걸(1497~1579)의 업적과 덕행을 추모하고자 1598년(선조 31)에 유생들이 세운 서원이다. 1986년 4월에는 파주시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었다.


파주시향토유적 제1호 전경사진1
파주시향토유적 제1호 전경사진2

1790년(정조 14)에 유생 정재심이 사액(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린 서원)을 신청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서원은 철폐되었다. 이후 1924년 지역의 유생 50여 명이 뜻을 모아 복원하여 백인걸과 그의 문인 조감, 김행, 신제헌, 백유함의 위패를 모셨다.



백인걸은 조광조의 제자로 명종 때 예조좌랑, 호조정랑, 남평현감 등을 역임했다. 선조 때는 이조참판, 대사간, 대사헌 등을 거쳤으며 청백리로 선정되어 기록에 남아 있다. 그는 동서분당의 폐단을 지적하고 군비확장을 강조하기도 했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서원이 세워진 파주 집터에서 학문을 닦으며 후학을 양성했다. 이이 율곡과 우계 성혼도 그의 제자이다. 저서로는 <휴암집>이 있다.


추향제 축문에는 “휴암 백선생님께서는 도학과 정절을 평생토록 지키셨으며, 성현의 밝은 뜻을 이어받아 후생들을 일깨워 주셨다. 중양절(음력 9월 9일)을 맞이하여 정성스레 향(제수)을 올리오니...”라고 적고 있다.


서원에는 교실 기능을 하는 정륜당, 위패를 모시고 배향하는 사당, 솟을 대문 형식의 외삼문, 입구에 홍살문이 있다. 사당 왼쪽 담장 너머에는 백인걸의 옛 집터임을 알리는 화강암으로 된 유허비가 있다.


이용근(파주문화원)원장은 “백인걸 선생은 청백리로 선정될 정도로 겸손한 훌륭한 분이었다.”고 칭송한다. 이상열(용주서원) 원장은 “용주서원은 파주시향토유적 제1호로 의미 있는 곳이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추향제를 보러 온 월롱초등학교 김예인(6학년), 김예원(5학년) 양은 “청소하러 몇 번 와 봤다. 오늘 제사 지내는 것을 보았는데 숙연한 마음이 든다.”고 말한다. 아이들과 함께 온 박경은 교사는 “마을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나야 한다. 학교를 살리기 위해 어르신들이 노력해 주고 계신다.”며 “마을 속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지역 행사를 보여주고 싶어 왔다.”고 덧붙인다.

 

조선시대 사립학교였던 서원은 어느덧 시대의 변화로 그 기능은 사라지고 있지만, 마을 어르신들이 치르는 행사에 참여한 아이들의 기억 속에는 숙연하게 느꼈던 용주서원의 추향제가 멋 훗날에도 남아 있을 것이다.

 

용주서원 주소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 용주서원길 46

 




취재 : 최순자 시민기자

작성일 : 2017-11-21조회수 :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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