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7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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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리와 장명등
- 박중손 묘역을 찾아

나른하고 한적한 오후 손님도 없기에 핑계 삼아 ‘오금이 저린 사람만 모여 살아서 오금리인가?’ 혼자 열없이 웃음을 머금고 오금리에 있다는 장명등을 친전하기로 마음먹고 차를 돌렸다. 무더위가 또다시 기승을 부린다. ‘아! 이럴 땐 시원하게 소나기라도 한껏 퍼부었으면 좋으련만..’ 아쉬움도 잠시, 차가 이내 엘지디스플레이단지가 있는 엘지로 끝자락 금승사거리에서 멈춘다. 여기서 차머리를 좌측으로 돌리면 시골길 같은 도로로 헤이리예술마을까지 연결된다. 차창 밖으로 식당가들이 여기저기 보이더니 이내 좌측으로 웅지세무대학교 표지판이 나타난다. 이어서 조금 더 나가자 박중손 묘역 장명등 문화재 알림판이 나를 반긴다.


박중손 묘역을 찾아 가는길
박중손 묘역을 찾아 가는길 느티나무

우측 좁은 길로 언덕을 오르자 굳이 설명을 안 해줘도 알 것 같은 아름드리 울창한 느티나무 한그루가 수호신처럼 버티고 서서 나를 검문한다. 수령이 500여년이 넘게 추정되는 14m 높이의 느티나무는 파주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밀양박씨 공효공파 종친회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박중손(朴仲孫)이 조선시대인 1466년에 죽자 널리 알려진 지관이 명당자리를 찾으려고 이곳저곳을 샅샅이 뒤졌으나 헛수고였다. 지관이 호피산머리 마을에 이르러 서성거리며 ‘내눈이 멀었구나!’하며 자신을 탓하던 중에 갑자기 매봉재에서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려 이상히 여기고 까마귀 우는 곳으로 올라가 지세를 살폈더니 좋은 산소자리가 눈에 띄었다.


 이에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 눈이 멀었도다.’ (叱吾目,나의 눈을 질타하다)하며, ‘까마귀 네가 너무 아름답고 어여쁘구나.’(烏告美,까마귀의 아름다움을 알리다) ‘네가 나를 도와 좋은 산소자리를 알려주었구나!’ 하였다. 후일 호피산 아래에 있는 부락을 질오목이라 하고 매봉재가 있는 마을을 오고미, 오금리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밀양박씨 후손들이 이곳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이곳 파주시 탄현면 오금리(吾今里)는 옛날엔 질오목(叱吾目)과 오고미(烏告美) 마을로 나뉘어 있었으나 1914년부터 질오목에 오(吾)자와 오금미의 금(今)자를 따서 지금의 오금리로 불러오고 있다.


차는 어느덧 마을 중심으로 들어와 장명등 표지판을 발견하고 우측으로 급하게 돌았다. 급하게 돌려 자세를 갖추니 눈앞으로 비각이 보인다. 차를 옆에 세우고 내려서 비각 앞으로 다가갔다. 비각안의 비석은 1964년에 후손들이 세운 밀산군 박중손의 신도비이다.


장명등
비각
신도비 전면
신도비 후면

좁은 길을 조심스레 들어오자 돌담 앞 너른 주차공간이 보여 차를 세웠다. 깨끗한 돌담으로 둘러진 한옥은 수경문과 중구제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재실이다.  재실에서 방향을 돌려 산자락을 올라탔다. 경사가 만만하지 않다. 급한 경사로를 피해 옆으로 돌아 힘들게 오르니 산소 앞에 도열한 석상의 뒷모습과 주인공 석등이 보인다.


마지막 남은 언덕을 숨 가쁘게 뛰어넘자 3단으로 조성된 묘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열한 석상과 석등
묘역전경

봉분을 기준으로 나를 바라보면 오른쪽이 박중손의 묘이고 왼쪽이 부인 남평 문씨의 묘이다. 양쪽의 봉분 앞으로 제사상을 차리는 상석이 있고 한단아래 앞에 오늘의 주인공인 석등! 바로 장명등 한 쌍이 각각 다른 모습으로 놓여있다.


장명등 옆으로는 문인석과 한단 아래로 무인석이 좌우로 서있고 화관석 모양의 신도비가 세월의 모진풍파를 이겨내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봉분측면에서-본-석등
문인석과-무인석
신도비-전면
위에서본-봉분의-형태

장명등을 살펴보기 전에 봉분을 살펴보면 봉분의 형상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둥근형태의 봉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는 아직 조선초기라서 고려의 영향을 받아 직사각형 모양의 장방형 구조의 봉분형태를 띄고 있다.


장명등(長明燈)이란 잡귀가 불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묘역에 불을 밝혀 사악한 기운을 쫓기 위해 설치한 석등이다.

 

특히 박중손 묘역에 설치된 장명등은 유형문화재 중에서도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국가에서 보물(제1323호)로 지정하였다. 박중손 묘 앞에 놓인 장명등이 압권인데 일월형각(日月形刻)으로 독특하다. 무덤 쪽에서 바라보아 우측은 그믐달과 좌측은 둥근 해 형상의 화창(석등의 불을 켜 놓는 부분에 뚫은 창)으로, 전 후면은 땅을 상징하는 정사각형 모양의 화창을 관통하여 조각했다.


박중손은 세종대왕시절에 대과에 급제하고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근무를 하였는데 특히 서운관 판관으로 일하며 천문지식에 뛰어난 소질을 발하여 세종대왕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러한 영향을 받았는지 장명등도 천문을 형상화한 모양으로 조각된 것으로 추정한다. 남평 문씨 묘 앞의 장명등은 박중손 묘 앞의 장명등보다 전체적으로 보아 가늘고 긴 모양으로 날렵하게 조각되어있다.

 

남평문씨-장명등
화창속의-화창

남평 문씨 장명등 화창 속으로 박중손 장명등을 바라본 사진속의 풍경이 오늘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 주소 : 파주시 탄현면 오금리 산 19

* 가는방법 : 금승사거리 -> 헤이리 예술마을 ->오금리 -> 박종순 장명등 이정표 -> 박중손 묘역




취재 : 김명익 시민기자

작성일 : 2017-8-08조회수 : 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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