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7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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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액을 세 번이나 받은 서원을 아시나요?
- 파평면 파산서원을 찾아

가을이 깊어가던 11월 초, 파명면 우계라는 냇가를 앞에 두고 파산 아래 자리 잡은 파산서원(경기도문화재 제10호)을 찾았다. 이곳은 조선시대 고종 8년(1871)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존치됐고, 효종 원년(1650)과 숙종 20년(1694)에 사액(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린 서원)을 받았다. 서원 서쪽에 있는 경현단도 순조 7년(1897)에 사액을 받았다.


파산서원
파산서원2


파산서원은 조선 중기 학자인 청송 성수침(1943~1563)과 그의 아들 우계 성혼(1535~1598), 형제 성수종(1495~1533), 휴암 백인걸(1497~1579)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제사는 매년 음력 2월 중정일(中丁日)에 지낸다.


파산서원은 이이 율곡 등에 의해 세워졌다. 처음에는 청송서원이라 칭하다가 유생 백홍우의 상소로 파산서원이라 사액을 받았다. 임진왜란 때 훼손되어 복구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다시 불에 탔다. 이후 1966년에 지역 유림들에 의해 재건됐다. 1983년에는 경기도향토문화재로 지정받았다.


성수침은 조광조의 제자로 스승과 주변사람들이 사화(기묘)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고 벼슬에서 물러나 처가가 있는 파평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곳에 죽우당을 짓고 아들 성혼을 비롯하여 후학을 가르친다. 그는 도학과 글씨에 능했고 정절을 지킨 사람으로 당대에 존경을 받았다.


파산서원 표지설명판
파산서원 전경사진1

서원 입구에 하마비(말을 타고 지나는 사람은 누구나 내려야 하는 비)와 홍살문이 있다. 하마비를 통해 서원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경내에는 삼문과 사당이 있다. 사당에는 성수침을 중심으로 좌우로 성혼, 성수종, 백인걸을 모시고 있다. 교실 역할을 하는 강학당은 찰윤당(察倫堂)이라 명명하여 사당 담을 넘어 서쪽에 두었고, 그 옆에 경현단이 있다. 경현단은 조감, 성문준, 신일민의 뜻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동쪽에는 서원을 관리하는 관사가 있다.


한때는 기호사림 서인들의 본거지였고 많은 후학을 길러내던 사학기관이었던 파산서원 앞에는 고사목이 자리 잡고 있다. 김종열(파산서원) 원장은 “이것도 역사이므로 그대로 놔두기도 했다.”고 한다.


파산서원 나무 사진
파산서원-문과 기와사진
김원장
자운서원 율곡문화제, 용주서원 추향제, 파산서원 안내

김 원장은 기자와 세 번이나 만났다. 자운서원 율곡문화제, 용주서원 추향제, 파산서원 안내를 위해서였다. 그만큼 성현을 받들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는 의미이리라. 그는 “유서 깊은 파산서원을 복원하기 위하여 파주시에서 국가문화재 등록 신청을 문화재청에 올려 심사 중에 있다.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기대하며, 이를 계기로 파산서원이 옛 모습으로 복원되었으면 한다.”라고 절실함을 전한다.


파산서원은 전형적인 배산임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복원되어 지역의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성현들의 지혜를 배우고 인성을 닦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바람 끝이 차가운 가을 끝자락에 찾아 간 손님에게 따스한 커피 한 잔을 내민 서원 관리인의 마음도 자라나는 세대가 전해 받았으면 한다.


파산서원 주소

파주시 파평면 파산서원길 24-40



취재 : 최순자 시민기자

작성일 : 2017-12-5조회수 :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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